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8보병사단 사단장 살인사건 (문단 편집) == 사건의 결과 == 정 중령은 범행 직후 곧바로 [[국군기무사령부|특무대]]에 자수하여 검거되었고 사건 현장에 있던 연대장 송광보 대령도 살인방조 혐의로 구속되었다. 이와 동시에 정 중령과 송 대령은 각각 대대장, 연대장에서 보직해임되었다. 군사법정에 회부된 정 중령은 "서 장군이 나를 쏘려고 권총을 장전하는 소리를 들었다. 그래서 자위권을 행사한 것"이라며 [[정당방위]]를 주장했지만 애당초 서 장군의 총에는 실탄이 없었음이 밝혀졌기에 결국 정 중령에게는 [[사형]]이 선고되었다. 한편 같이 구속된 송광보 대령은 징역 4개월에 급료 전액몰수를 선고받고 [[파면]]당했다. 정구헌 중령은 1959년 5월 20일 오후 2시 [[대구광역시]] [[육군정보학교]] 야외 교정의 산골짜기에서 [[총살형]]에 처해지면서 향년 34세로 생을 마감했다. 정 중령은 이날 사형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태연한 모습으로 형 집행을 받아들였고 집행 직전 만난 이전 부대 상관인 2군사령부(현 [[제2작전사령부]]) 법무부장 최문기(崔文基) [[대령]]에게는 "오랜만입니다. 안녕하셨습니까?"라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. 또 입회차 형장에 몰려든 [[신문]][[기자]]들에게도 "다들 고생이 많다."고 담담하게 손을 흔들었다. 육군 [[군종 목사]] 양석봉 중령의 기도와 설교를 들은 후 아래와 같이 유언을 남기고 총살형에 처해졌다. * 사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. * 일흔 살의 노모와 처자식을 남기고 먼저 가는 것이 미안할 뿐이다. * 앞으로 자신의 개인 목적을 위해 부하들을 구타하거나 혹사시키는 [[병영부조리|병영 내의 악습]]이 없어지길 빈다.[* 하지만 정 중령의 바램과는 달리 21세기에도 병영부조리가 군 내부의 심각한 문제점인 현실이 씁쓸한 현실이다.] * 나는 지금까지 양심적으로 신념에 따라 살아왔다고 자부하며, 깨끗이 죽는다고 생각한다. 한편 1959년 2월 18일 변을 당한 서정철 준장의 유해는 2월 23일 [[국립서울현충원]] 제1장군 묘역에 안장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